대학에 입학했을 때 유명한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 선배는 틈만 나면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고, 우리 후배들을 향해서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과 MT나 모임 등에서도 일절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며 학과보다 선교단체에 더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배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선배가 군대에 다녀온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겁니다. 그토록 열심히던 선교단체를 과감히 나오고 이제는 누구보다 앞서서 술과 담배를 즐기며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를 비난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토록 열심이었던 믿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일도 있습니다. 한 평생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권면하면 내가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지 무슨 하나님을 믿냐며 큰 소리를 뻥뻥 치는 분이었습니다. 믿을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어느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 후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교회에 나오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도대체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해서 하루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역시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길에 들어서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곰곰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믿음의 신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예배당에 나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 전도하는 말을 쉽게 받아들여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복된 일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엄청나게 큰 은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복되고 하나님의 엄청나게 큰 은혜라고 합니다.
이 엄청나게 큰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그것을 늘 잊지 않고 감사하며 지내는 한 사람을 봅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잊지 않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사도행전에서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에 걸쳐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외에서도 간략하게 말합니다. 자기 자랑을 극히 자제하는 바울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어째서 이렇게 몇차례에 걸쳐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놀랍고 감격스럽고 신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일에 앞장섰었는데, 홀연히 임한 밝은 빛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된게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일은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임을 바울은 명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바울은 오늘의 자기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를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매일매일 입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행위로 구원받았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인 존 뉴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항적이고 방탕한 삶을 살던 존 뉴턴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감격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랍습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맙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존 뉴턴은 말년에 자신의 기억력이 감퇴하자 다른 건 다 잊어도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크나큰 죄인이라는 것, 둘째로 그리스도는 크신 구세주라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다간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한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 교회에서 무려 27년간을 봉사했다.’
사도 바울이나 존 뉴턴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감격과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그렇게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늘 감사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를 곰곰 생각해보니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매일 예배하고 말씀을 접하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다 보니 구원받은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하는 것보다 그저 해야 할 일들이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퇴색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럼 어떻게 사도 바울이나 존 뉴턴처럼 구원받은 걸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지낼 수 있을까요? 구원받은 사건을 떠올려 보는 겁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됐는지, 언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내게 경험되었는지를 회상하는 겁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는지, 어떤 환경들을 통해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그 지점으로 돌아가 깊이 살펴 보는 겁니다. 모태신앙이든 중간에 예수님을 믿었든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유명한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 선배는 틈만 나면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고, 우리 후배들을 향해서도 주일이면 교회에 가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과 MT나 모임 등에서도 일절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며 학과보다 선교단체에 더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배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선배가 군대에 다녀온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겁니다. 그토록 열심히던 선교단체를 과감히 나오고 이제는 누구보다 앞서서 술과 담배를 즐기며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를 비난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토록 열심이었던 믿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일도 있습니다. 한 평생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권면하면 내가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지 무슨 하나님을 믿냐며 큰 소리를 뻥뻥 치는 분이었습니다. 믿을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어느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 후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교회에 나오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도대체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해서 하루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역시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길에 들어서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곰곰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믿음의 신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예배당에 나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 전도하는 말을 쉽게 받아들여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복된 일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엄청나게 큰 은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복되고 하나님의 엄청나게 큰 은혜라고 합니다.
이 엄청나게 큰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그것을 늘 잊지 않고 감사하며 지내는 한 사람을 봅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잊지 않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사도행전에서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에 걸쳐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외에서도 간략하게 말합니다. 자기 자랑을 극히 자제하는 바울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어째서 이렇게 몇차례에 걸쳐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놀랍고 감격스럽고 신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일에 앞장섰었는데, 홀연히 임한 밝은 빛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된게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일은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임을 바울은 명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바울은 오늘의 자기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를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매일매일 입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행위로 구원받았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인 존 뉴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항적이고 방탕한 삶을 살던 존 뉴턴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감격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랍습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맙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존 뉴턴은 말년에 자신의 기억력이 감퇴하자 다른 건 다 잊어도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크나큰 죄인이라는 것, 둘째로 그리스도는 크신 구세주라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다간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한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 교회에서 무려 27년간을 봉사했다.’
사도 바울이나 존 뉴턴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감격과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그렇게 기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늘 감사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를 곰곰 생각해보니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매일 예배하고 말씀을 접하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다 보니 구원받은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하는 것보다 그저 해야 할 일들이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퇴색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럼 어떻게 사도 바울이나 존 뉴턴처럼 구원받은 걸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지낼 수 있을까요? 구원받은 사건을 떠올려 보는 겁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됐는지, 언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내게 경험되었는지를 회상하는 겁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는지, 어떤 환경들을 통해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그 지점으로 돌아가 깊이 살펴 보는 겁니다. 모태신앙이든 중간에 예수님을 믿었든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